Korean Translations of Articles on markcho.com

KakaoTalk_20190314_111945608.jpg


I was recently approached by Professor Younghoon Kim, who teaches English at Dongguk University and Korean translator of Bruce Boyer's True Style, to provide some articles on my website as source material for English to Korean translation for his students. These translations are some of the final work of the students' translation workshop class.

I'm not Korean and my Korean ability is non existent but I've been told the translations are very good, so congratulations to the students and best of luck in future!

얼마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영문과의 김영훈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 교수는 브루스보이어의 <트루 스타일>의 한국어판 번역자인데, 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글을 본인의 수업에서 번역 텍스트로 사용하고 싶어했습니다. 여기 한국어로 번역된 글들은 김 교수의 번역 워크샵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제출한 최종 결과물입니다. 학생들의 노고를 공유하고자 제 홈페이지에 새로운 코너도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어라고는 한 마디도 모르지만, 학생들의 번역이 매우 훌륭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모두들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무한한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KakaoTalk_20190314_111946503.jpg


#1

The Armoury Breathes New Life Into Classic Menswear

Writer: Joanne Ooi - Follow Joanne @joanneooi and @culture.vlog

Translated by Snim YG (Jooyoung Jang)

Supervised by Younghoon Kim

 < https://www.euronews.com/living//2017/11/13/the-armoury-breathes-new-life-into-classic-menswear>

<아머리! 클래식 남성 정장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다>

 

Since its founding in Hong Kong in 2010, The Armoury has become one of the most admired and closely watched menswear retailers in the world. Much has been made of its wide-ranging eclecticism, which dares to bring under a single roof bespoke and ready-made offerings from Savile Row, Italy, Japan and the United States.

2010년 홍콩에서 설립된 아머리는 이제 세계인이 주목하고 격찬하는 남성복 매장이다. 영국의 새빌로우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다양한 비스포크와 기성복이 아머리라는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다. 아머리는 이러한 과감한 행보를 통해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루어 냈다.

 

However, The Armoury has also pioneered a new model of brand building for today’s age. By adeptly harnessing the tools of digital and social media to draw attention to its best-in-class offering of men’s classic, tailored clothing and amplify its unique philosophy of cosmopolitan individuality, the brand has reinvigorated tradition and inspired a legion of devotees.

아머리는 또한 오늘날의 트렌드에 발 맞춘 새로운 브랜드 구축 모델을 개척했다. 그들은 디지털과 소셜 미디어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최고급 클래식 남성복 대한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그들만의 고유한 철학을 널리 알렸다. 이를 통해 아머리는 클래식 남성복 전통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고, 많은 추종자들을 탄생시켰다.

 

When Mark Cho and Alan See hung out their first shingle in a quiet corridor of Hong Kong’s Pedder Building, there was no reason to believe that they would be able to survive, let alone thrive, in a city teeming with men’s tailors.

마크 조와 알렌 시가 홍콩 페더 빌딩 한 구석에 처음 간판을 내걸었을 때, 사람들은 테일러가 넘치는 이 도시에서 그들이 성공은 고사하고 생존이나 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

 

Having no real marketing budget, they had to be resourceful, so they began posting photographs of themselves, their tailors and clients, kitted out in The Armoury’s clothes and accessories, on Tumblr.

마크와 알렌은 마케팅 예산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창의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아머리의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모델이 되었다. 나아가 그들은 테일러와 고객들의 사진도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 시작했다.

 

The photography, the style of which remains the same today, wasn’t over-polished, staged or retouched, just like the images of Scott Schumann and Garance Doré, who were spearheading a new genre of image-making – street fashion photography – at the time.

초창기 그들의 사진은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라는 장르 혹은 이미지를 선도한 스콧 슈만과 가랑스 도레의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의 보정만을 거친 그들의 사진은 지나치게 세련되지도, 과도하게 포장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스타일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The philosophy of making real people the stars of the brand continues until today and, indeed, the retailer celebrates the sartorial quirks and idiosyncrasies of a wide cast of characters, including even its own staff who frequently figure in social media, modeling their own distinctive styles of dress (whether vintage, prep or sporty).

평범한 사람들을 브랜드의 스타로 만드는 아머리의 철학은 지금도 유효하다. 실제로 그들은 옷차림이라는 면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특색이나 특징, 혹은 기발한 면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이는 소셜 미디어에 종종 등장하는 아머리의 스탭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빈티지나 프레피, 또는 스포티 등) 장르에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Rather than suppressing their individuality to espouse a monolithic corporate style, The Armoury celebrates and actively promotes differences of taste, style and expression, a huge rarity in a world of designer brands accustomed to dictating from on high.

아머리는 그들만의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멤버들의 개성을 억누르기보다는 오히려 취향이나 스타일 혹은 이를 표출하는 방식에서의 차이를 고무하고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이는 상명하복에 익숙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세계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Just as important, this approach is salvation for the man who still needs to wear a suit to the office. The brand presents a full menu of options falling between the antipodes of bog-standard, traditional suiting and unwearable designer clothing.

아머리의 이러한 스타일은 사무실에서 여전히 슈트를 입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구원과 같다고 말 할 수 있다. 아머리는 평범한 전통 슈트와 난해한 디자이너 패션, 이 양극단 사이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선보인다.

 

Because they’ve made it their mission to make classic tailored clothing relevant, Cho and See have no hang-ups about sourcing products from anywhere in the world. What matters is quality and value, rather than restrictive, traditional allegiances which, let’s face it, are increasingly unimportant in today’s flat, border-less world and have only hindered the creation of compelling one-stop retail concept stores.

마크와 알렌은 클래식 남성 정장을 다시금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세계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품을 매입한다. 중요한 것은 품질과 가치이다. 오늘날과 같은 평평하고 국경 없는 세계에서 전통적이며 배타적인 충성도는 사실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특정 제품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충성도는 오히려 아머리와 같은 훌륭한 원스톱 스토어의 태동에는 방해가 될 뿐이다.

 

Compared to The Armoury, traditional models of menswear retail offering products from only one sartorial tradition, i.e. Italy, England or Japan, can feel as anachronistic as spats.

아머리와 비교하면 이태리면 이태리, 영국이면 영국, 이렇게 한 가지 스타일 제품만 제공하는 전통적인 남성복 매장들은 각반 마냥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다.

 

Part and parcel of throwing out the rulebook on how to market menswear, Cho and See have always used their own experiences of discovery and learning as the touchstone of their messaging.

마크와 알렌은 남성복 마케팅에서 당연시하는 규칙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경험에서 발견하고 배운 것을 기반으로 고객과 소통한다.

 

Sharing their reverence for the time-honored craftsmanship and skills that go into a men’s bespoke suit, bag or shoe, they began documenting and sharing their experiences on social media when they launched the business – drawing back the curtain, so to speak, on how suits are made, fabrics are sourced, lasts are created, to create a rich magazine-like stream of content, replete with video.

마크와 알렌은 남성 비스포크 슈트나 가방, 혹은 구두에 담겨있는 유서 깊은 장인정신과 그들의 기술을 경외하는 마음을 나누고자 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할 때 그들은 소셜 미디어에 자신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슈트나 구두 라스트의 제작과정과 원단을 수급하는 과정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마크와 알렌은 다양한 동영상이 있는 그들의 소셜 미디어를 볼거리가 풍부한 잡지처럼 만들었다.

 

Given the paucity of imagery and writing on the topic of classic men’s clothing at the time, their content was repurposed, re blogged, linked to and credited among the small but authoritative constellation of menswear bloggers who counted.

당시에는 클래식 남성복 분야에 대한 사진이나 글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마크와 알렌이 만든 콘텐츠는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권위 있는 남성복 블로거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아 널리 퍼졌다.

 

Without consciously intending to, Cho and See started what has probably become one of the most successful and compelling online content marketing campaigns in the history of menswear – a campaign and approach which continues until today and now includes an in-house photographer and videographer.

마크와 알렌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성복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경쟁력 있는 온라인 콘텐츠 마케팅을 시작했다. 그들의 캠페인 전략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그들만의 사진가와 비디오 편집자를 두고 있을 뿐이다.

 

From the very beginning, it has been The Armoury’s mission to be “the best men’s store possible” by “establishing a platform” to introduce the world’s best artisans, no matter how small or remote, to its clients in Hong Kong and, since 2014, New York.

아머리의 목표는 처음부터 최고의 남성복 매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산량이 적거나 거리가 멀어도 세계 최고의 장인들을 홍콩의 고객에게 소개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2014년부터는 뉴욕의 고객에게도 이러한 플랫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Considering that the tiny production capacity of many artisan and bespoke suppliers usually makes it unattractive to sell outside of their domestic markets, it’s no small feat that The Armoury represents 30 international suppliers from all over the world.

대부분의 장인이나 비스포크 제작 업자들은 생산량이 적어서 해외시장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머리가 전 세계 각 지역에 퍼져있는 30여개 거래처를 대표하는 사실 대단한 일이다.

 

What with the logistics and investment involved in staging trunk shows in Asia and the U.S., one would expect The Armoury to insist on long-term exclusivity with its suppliers.

사람들은 아머리가 아시아와 미국에서 트렁크 쇼를 기획하느라 투자한 물류 비용을 이유로 공급업체에게 장기적으로는 독점권을 요청하리라 예상한다.

 

But Cho and See are only too happy to bring greater attention to the unsung heroes of traditional clothing and see them flourish. Contrast their attitude to the merciless approach of today’s retailers for whom the merchant-supplier relationship is a zero-sum game and The Armoury’s philosophy sounds downright naïve.

그러나 마크와 알렌은 전통 방식으로 옷을 만드는 이름 없는 영웅들이 유명해지고 번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소매상들이 상인과 공급자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이라고 보는 무자비한 접근 태도와 비교하면 아머리의 철학은 지나치게 순진해 보인다.

 

But it’s precisely this return to the old-fashioned values of long-term reciprocity and mutual support which can reinvigorate this sector and widen its appeal to a new generation of sartorial connoisseurs.

분명 상호간의 지속적 이익과 협조를 중요시하는 전통적 가치로의 회귀가 비스포크 시장을 다시금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새로운 고객들에게 비스포크의 진정한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다.

 

Ditto the attitude of Cho and See towards former employees who decide to strike out on their own. Regarding Anglo-Italian, a new menswear concept recently launched in London by former employees, Cho says, “They’ve taken inspiration from some of the people we buy from. I don’t consider that copying. Best of luck to them. They were great people.”

독립을 결정한 옛 직원들을 대하는 마크와 알렌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옛 직원들이 최근 런던에서 앵글로-이탈리안 이라는 새로운 남성복을 런칭했다. 마크는 이들의 콘셉트에 대해 "그들도 우리와 거래하는 일부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것을 베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고 말한다. 또한 ”그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다."라고 덧붙였다.

 

“Besides,” he continues, “if something is close to your heart, it’s going to be personal to you. It’s impossible to have a copy of Mark Cho or Alan See running around. There are some weird copies of The Armoury in China. Oftentimes, they don’t think about why something was done in the first place and that’s why they’ll never get it right. They can only be superficial. It doesn’t come from the heart or soul.”

마크는 또한 계속해서 말한다. "늘 마음에 소중히 생각하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모방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에는 허접하게 아머리를 모방한 제품들이 일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애초에 왜 그렇게 시도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모방은 마음이나 영혼에서 온 것이 아니기에 그저 피상적이다."

 

These days, competitors keep a keen eye on new entrants to the Armoury’s stable of talent, eager to poach or at least add them to their own merchandise mix. Rather than worrying about the competition though, Cho and See are sidestepping the problem by creating exclusive products with their top suppliers which celebrate the unique DNA of their brand.

요즘 경쟁업체들은 아머리의 안정적인 재능에 새롭게 합류하는 사람들을 예리하게 주시한다. 그들의 재능을 가로채거나 안되면 적어도 자신들의 판매 리스트에 그들의 재능을 추가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마크와 알렌은 경쟁자에 대해 걱정하기는커녕 자사 브랜드의 고유한 DNA를 찬양하는 최고의 납품업체들과 함께 고유한 별주 제품을 만들어 문제를 피하고 있다.

 

To wit, the Armoury launched its first collection of footwear this month. Based on a proprietary last named Hajime (the Japanese word for “beginning”), the shoes were designed in collaboration with Yohei Fukuda, “one of the greatest bespoke shoemakers in the world,” and are made in Northampton, England where Fukuda once trained.

재미있게도, 아머리는 후쿠다 요헤이와 협력하여 이번 달에 그들의 첫 번째 구두 컬렉션을 선보였다. 구두 라스트는 ‘하지메’(일본어로 시작을 의미)‘로 이름 지어진 요헤이의 고유한 라스트이다. 이 라스트를 바탕으로 전세계에서 유명한 비스포크 구두 제작자인 요헤이가 디자인 했다. 그리고 이 구두는 후쿠타가 한때 수련했던 영국 노샘프턴에서 생산된다.

 

Saluting the birthplace of The Armoury, each style is named after an important place in Hong Kong (“Wyndham”, “Pedder” and “Gloucester”). As a finishing touch, an illustration of the corresponding place by long-time collaborator Mr. Slowboy appears on each shoe box label.

아머리는 창업지인 홍콩 지역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각각의 스타일을 홍콩의 중요한 장소 이름을 따서 “윈담“ 이나 “페더” 또 “글루세스터” 등으로 이름 지었다. 화룡점정으로 오랜 협력자 일러스트레이터 슬로우보이가 스타일 이름에 맞는 장소 삽화를 그린 라벨을 각각의 구두 상자에 붙였다.

 

The collection comprising three styles of classic town oxfords is available in store and online. If ever a series of products could encapsulate the history and philosophy of a company, this is it.

Count on The Armoury to keep on bending the narrative of men’s fashion as Cho and See find new ways to refresh and reinterpret the storied byways of classic menswear.

이 컬렉션은 옥스퍼드 구두의 세 가지 클래식 스타일로 구성되었고 아머리 매장과 온라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아머리의 역사와 철학을 요약해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컬렉션이다.
마크와 알렌이 찾아낸 새로운 방법으로 아머리가 남성 패션에 계속해서 힘을 쏟기를 바란다. 또한, 클래식 남성복의 이미 잘 알려진 소소한 부분들도 새롭게 재해석하기를 기대해 본다.


#2

The Working Habits of Antonio Liverano

안토니오 리베라노

First published 2016-08-04

Text by Mark Cho / Photo by Mark Cho

글 마크 조 / 사진 마크 조

Translated by Hyesook Shin

Supervised by Younghoon Kim


As someone still in the early stages of his career, I'm fascinated by the working habits of the greats, particularly how they use their time. Rich or poor, smart or slow, in a day we all have the same 24 hours to work with. How the greats use this limited resource, that is given equally to everyone, is of particular interest to me.

남성정장 패션업계에서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일하는 습관에 관심이 많다. 특히 그들이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에 감탄하고 있다. 부자이든 그렇지 않든, 똑똑하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하루에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내에서 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업계 거장은 과연 시간이라는 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주 궁금하다.

 

Antonio Liverano, one of the greatest tailors in the world, who cuts in the Florentine style, is today's subject. Here's how he spends his day:

피렌체스타일 클래식 남성 슈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일러 안토니오 리베라노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살펴보자.

 

5AM-Antonio wakes up, gets dressed and enjoys a simple breakfast of a pastry and a cafe macchiato.

오전 5시 - 일어나서 옷을 입고 빵가 커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다.

 

6.45AM- Antonio departs from his home in the countryside to his shop in the city of Florence, sometimes by car and sometimes by train. Once he's on the road, he starts thinking about work. He starts by thinking about the business as a whole, then recalling individual customers and their orders.

오전 6시 45분 - 한적한 시골에 있는 집에서 차 또는 기차로 피렌체 매장으로 출근한다. 출근길에 사업전반을 구상하고, 그 후 개별 고객들의 주문을 검토한다.

 

7.45AM- Antonio arrives at the shop. He is usually the first one to arrive. After checking the shop, he prepares the irons, starting them so they are ready to use when the other tailors arrive. Antonio's first job at 8 years old when he first started in tailoring, was preparing the irons. Back then, irons needed to have lumps of hot coal placed into them by hand.

오전 7시 45분 - 매장 도착. 보통은 제일 먼저 출근한다. 매장 점검을 한 후, 테일러들이 오면 바로 쓸 수 있도록 다리미를 준비해놓는다. 안토니오는 8살에 다리미를 예열하는 것으로 테일러링을 시작했다. 그 땐 손으로 일일이 뜨거운 석탄 덩어리를 다리미 안에 집어넣던 시절이다

 

8.30AM- Antonio checks the work of the tailors from the day before. He is still intimately involved with all the garments, constantly doing quality control on everything that passes through the shop.

오전 8시 30분 - 테일러들이 전 날 작업한 것을 점검한다. 매장에서 완성되어 나가는 모든 제품이 계속해서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전히 전 공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9.30AM- 1PM- Antonio spends most of his morning cutting customers' orders.

오전 9시 30분 - 오후 1시 – 주문 받은 것을 재단하며 오전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1PM- 2PM- Lunch break. Antonio is now 78 years old. On some days, if he is feeling tired, he will return home early.

오후 1시-오후 2시 - 점심시간. 안토니오는 78세의 고령이어서 때로 피곤한 날에는 일찍 퇴근하기도 한다.

2PM- 7PM- Antonio continues to cut but also does some teaching and training with the younger tailors in the workshop. The workshop now has 8 tailors, 5 of which are under 40 and still in training. Antonio is passionate about tailoring and in training his apprentices. He looks for young people who share that passion and he tries to grow them. In everything he does, he tries to transmit that passion and expects the same from his juniors.

오후 2시-오후 7시 - 재단도 하지만, 짬짬이 젊은 테일러들과 함께하는 수련생교육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작업실에는 총 8명의 테일러가 있는데 그 중 5명은 40세 이하로 아직 수련 중이다. 안토니오는 또한 이 분야에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을 발굴해서 키우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를 제자들에게 잘 전수하고자 한다.

 

7PM- Antonio returns home to eat dinner with his daughter's family who live next door to him. His work starts early in the day but at 7pm, it ends and he does not dwell on work any further preferring to spend time with his family and recuperate, in bed by 10pm and ready for the next busy day.

오후 7시 - 퇴근하면 인근에 거주하는 딸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 저녁 7시가 되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 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바쁘게 보낼 다음날을 위해 10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Tailors stay in their profession all their lives. It is a difficult trade to master and it requires a lifetime of dedication. Often their businesses end when they retire. Antonio, a more modern tailor than his age belies, always has his eye on the horizon. His finest apprentices, such as Qumal Selimi and Takahiro Osaki, have been with him for nearly ten years and are now coming of age with the potential to take over from where he leaves off. I have enormous respect for his longterm vision, to preserve his tailoring house and traditions and allow it to continue for another generation.

테일러는 한 눈 안 팔고 평생 재단 일만 하는 사람이다. 재단은 익히는 것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끝없는 헌신이 필요한 고달픈 직종이다. 그래서 보통 은퇴할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손에서 일을 놓게 된다. 고령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 감성을 지닌 안토니오는 항상 시야를 넓게 가지며, 패션사업을 장기적 비전으로 바라본다. 체말 셀리미와 타카히로 오사키 같은 수제자들은 거의 10년 세월을 함께 해 오고 있다. 이들은 안토니오가 지금껏 이루어 놓은 전통을 토대로, ‘리베라노 앤 리베라노’를 앞으로도 잘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피렌체 테일러링의 거장’ 안토니오 리베라노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3

An Interview with Jim Parker, Shop Manager of The Armoury NY

Originally Published 2016-10

Text by Jim Parker / Mark Cho / Photo by Mark Cho

짐 파커 / 마크 조

Translated by Hyesook Shin

Supervised by Younghoon Kim

  

Jim is the shop manager of The Armoury NYC. Friendly and even-keeled in nature, neatly dressed with a tendency for shades of blue, he has been a huge part of the team in NYC. He also happens to be from Nashville, Tennessee, Part of the Southern States with its own district culture with huge influence on American style and music. As a Southern, Jim is my reference for how best to wear seersucker, the classic American summer suiting.

파란색 계열의 옷으로 말쑥하게 차려 입은 짐은 아머리 뉴욕 매니저이다. 항상 친절하고 침착한 그는 이곳에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남부 테네시주 내쉬빌 출신이기도 하다. 내쉬빌은 특유의 문화로 미국적인 스타일과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친 곳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인의 전통적 하복 원단인 시어서커에 대해 항상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Mark

-마크

 

Could you give us a brief history of your career?

당신의 이력에 대해 간단히 말해 주겠는가?

 

I dropped out of recording engineering school because I couldn't stand the thought of sitting in a dark room, staring at a computer screen for hours on end- a pretty typical day for an audio engineer. I also knew I wouldn't do well in a typical 9-to-5 desk job. So, after a few years, I realized I could turn my lifelong interest in men's style into some sort of career. I went back to university and finished with a degree in fashion merchandising. After that, I snagged an entry level job at an old-school haberdashery in Nashville, and it all took off from there.

나는 원래 음향기술을 전공하는 학생이었으나 도중에 그만 두었다. 보통 음향기술자는 어두운 방에 앉아 컴퓨터 화면만을 쳐다보며 몇 시간이고 계속 작업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한 삶을 견딜 수 없었다. 또한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판에 박힌 사무직에도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가져왔던 남성패션에 대한 관심을 커리어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다시 대학에 가서 패션 상품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엔 내쉬빌에 있는 한 전통 남성복매장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오늘에까지 이르게 됐다.

 

What do you do at The Armoury?

아머리에서는 어떤 일을 맡고 있나?

 

I manage the Armoury New York retail store, which means my day-to-day activities are never set. Most days, though, you can find me on the sales floor leading clients through our made-to-measure process and assisting my staff in providing the best service possible.

뉴욕매장을 총괄관리하고 있다. 하루 일과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보통은 MTM 고객을 응대한다. 또한 직원들이 별 어려움 없이 고객한테 최상의 서비스를 드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How would you characterize your style?

본인의 스타일에 대해서 말해 달라.

 

I wish I could give a concrete answer to that question, but I can't. My style, like most people's, goes through phases. I live in Williamsburg, Brooklyn, one of the trendiest neighborhoods in the country, and most people there don't wear classic menswear. So lately, I've been interested in how to wear the clothing I enjoy without standing out, too much at least. That typically means wearing coarser, more casual fabrics-nothing too slick-and odd jackets and trousers instead of suits.

한 마디로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스타일도 계속해서 변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미국에서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곳 중 하나인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라는 곳인데, 여기 남자들은 정장을 잘 입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곳 분위기에 맞추어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옷들을 소화하고자 한다. 즉, 좀 더 조직감이 있어 캐주얼한 느낌이 나는 소재로 만든 옷을 주로 입고, 슈트대신 블레이저를 입는 편이다.

 

How do you find New York? Especially in comparison to Nashville?

뉴욕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 특히 고향인 내쉬빌과 비교하면?

 

New York is so much faster-paced than Nashville, but I like it. Just about anything one could ever want is available here, which is simultaneously liberating and frightening.

뉴욕은 내쉬빌 보다 훨씬 더 빠르게 돌아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맘에 든다. 뉴욕엔 없는 게 없다는 점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또 그래서 무섭기도 한 것 같다.

 

As a Southern, could you describe what a Southern Gentleman is? What do you think of the term?

남부출신으로서, ‘남부신사’에 대해 정의하면? 또 ‘남부신사’라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A Southern Gentleman treats everyone as a friend, even a stranger. He introduces himself by his full name, and refers to new acquaintances as Mr. or Ms. He dresses appropriately for the occasion. He always opens the door for fairer sex, pulls out her chair, helps her with coat. And never swears in front of her.

남부신사는 모든 사람을, 심지어 낯선 사람도 친구처럼 대한다. 자신을 소개할 때는 성과 이름을 같이 말하고, 초면인 사람에게도 정중하게‘미스터’와 ‘미즈’를 붙여 부른다. 또한 상황에 맞게 옷을 잘 입는다. 여성한테는 항상 문을 잡아주고, 의자도 앉으라고 빼주며, 코트도 받아준다. 그리고 여성 앞에선 절대 상스러운 말을 안 한다.

 

What do you think of seersucker?

시어서커라는 소재를 어떻게 생각하나?

 

Well, I'm wearing seersucker as I type this, so I'm a fan. It's a polarizing fabric-it seems when I wear it, everyone notices and has an opinion about it. I just like it because it's practical and reminds me of home.

보시다시피, 시어서커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이 원단의 팬이라고 할 수 있다. 시어서커는 굵기나 꼬임이 다른 두 종류 실을 놓고 가공했을 때, 수축 정도에 따라 경사방향으로 줄무늬나 요철이 나타나는 직물을 말한다. 시어서커를 입으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한마디씩 하는 것 같다. 구김이 적어 다림질할 필요가 없으니 실용적이고, 또 시원해서 남부에서 즐겨 입으니 고향까지 생각나게 해주어서 좋아한다.

 

You are also a keen musician, having spent a great deal of time performing live as well. What do you like to play? Why?

라이브 공연도 많이 한 열정적인 음악가이기도 한데, 어떤 곡들을 즐겨 연주하는가? 그리고 그 곡들을 연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It depends, really. If I'm on stage, I like to play anything that makes the crowd happy. If I'm just playing by myself, I'm usually working to improve an aspect of my playing I feel is lacking. Right now, that's uptempo country runs.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일단 무대에선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면 뭐든 다 한다. 혼자일 땐, 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연습한다. 현재는 빠른 컨트리 코드를 연주하고 있다.

 

Who are your musical influences?

어떤 음악가한테서 영향을 많이 받았나?

 

Oh, so many! Off the top of my head, I can say I've stolen a lick or two from Randy Rhoads, Andy Summers, Alex Lifeson, Jake E. Lee, Prince, Billy Corgan, Johnny Marr, George Benson, Eddie Van Halen, the Edge, Mike Campbell, Jack White, Brent Mason, Vince Gill, Daniel Donato, Zakk Wylde, and so many more I'm forgetting.

오, 너무 많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랜디 로즈, 앤디 서머즈, 앨릭스 라이프슨, 제이크 이. 리, 프린스, 빌리 코건, 조니 말, 조지 벤슨, 에디 반 헤일런, 디 에지, 마이크 캠벨, 잭 화이트, 브렌트 메이슨, 빈스 길, 다니엘 도나토, 잭 와일드가 있다. 이들에게서는 모두 한 두 소절 정도는 카피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많은데, 이제는 기억이 안난다.




#4

An Interview with Adam Marelli

First Published October 30, 2015

Photo by Adam Marelli / Text by Adam Marelli

<아담 마렐리>

10월30일, 2015년

사진 : 아담 마렐리 / 글 : 아담 마렐리

Translated by Jaeyun Park

Supervised by Younghoon Kim

adam marelli

Tell us about what you do?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해주겠는가?

 

I’m an artist and cultural photographer who specializes in photographing master craftsmen.

나는 예술가이자 문화 사진가로서 명장(名匠)들 촬영을 전문으로 한다.

 

At the moment I am in Italy photographing one of the last traditional gondola makers called D.co. Tramontin e Figli.

현재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남은 전통 곤돌라 제조업체 중 하나인 디.코. 트라몬틴 이 피글리를 촬영하고 있다.

 

Can you provide an anecdote that speaks to your own philosophy on style and clothing?

스타일과 옷에 관한 당신만의 철학을 잘 말해주는 일화가 있으면 하나 소개해달라

 

I like to wear clothes from people I know, personally.

개인적으로 지인들이 만든 옷을 선호한다.

 

It creates a cultural and personal bond that I find fulfilling. So what does that look like?

그들이 만든 옷을 입을 때, 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연결된다는 느낌이 있는데, 나는 그게 좋다. 좀 더 설명해 주겠는가?

 

After art school I cut my teeth in construction for a dozen years. It left a lasting impression on my style.

미술 학교 졸업 후 12년은 인테리어 디자인에 전념했다. 이는 지금도 내 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다.

 

When I’m in the studio or out shooting, I like hard wearing fabrics that are well cut and can take a beating. Look at old photographs of artist like Cezanne or Renoir, I’ve always enjoyed that they could wear a shirt and a jacket, but it was much rougher than most of the things you can find today.

스튜디오나 야외에서 촬영을 할 때는 항상 내구성이 좋은 원단으로 잘 만든 튼튼한 옷을 선호한다. 세잔이나 르느와르 같은 예술가의 오래된 사진을 보라, 작업할 때도 항상 셔츠와 재킷을 입고 있다. 나는 이점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옷은 우리가 오늘날 입는 옷보다 훨씬 투박한 옷이었다.

 

Dealing with craftsmen on such a regular basis and being a craftsman in your own right, how do you feel about the place of craftsmanship, particularly artisanal craftsmanship in the modern age of efficiency and mass production?

당신은 평소 장인들을 자주 만난다. 본인도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효율성과 대량생산을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장인 혹은 장인정신의 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Comparing craftsmanship with mass market is like comparing a truffles to astronaut food.

장인 정신을 대량생산품에 대는 것은 송로버섯을 우주비행사 음식과 비교하는 것과 같다.

 

Isn’t it amazing that you can have an ice cream sandwich that will last 1,000 years and still taste good in space?

우주에서는 1000년동안 저장해도 여전히 맛있는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놀랍지 않는가?

 

Sure!

물론이다!

But the knowledge, experience, and harmony with nature that come together when fresh truffles melt over a plate of pasta represents centuries of culture.

그러나 신선한 송로버섯이 파스타 위에 녹을 때 여기에는 수세기에 걸친 문화, 자연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함께함이 있다.

 

The truffle is only the physical manifestation of something that is in some ways still mystical.

여기서 송로버섯은 우리에게 여전히 신비로운 그 무엇의 물리적 현현일 뿐이다.

 

This is where craftsmanship has no peers. It is our connection to the past, living in the present, that informs the future.

그리고 이런 분야에서 장인정신에 필적할 것은 없다. 현재에서의 과거와의 연결,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미래를 예시한다.

 

 




#5

Brian Davis

<브라이언 데이비스>

First published in English December 27, 2015

2015년 12월 27일

Photo by Mark Cho / Text by Mark Cho / Brian Davis

사진 마크 조 / 글 마크 조 / 브라이언 데이비스

translated by Juyoung Choi

supervised by Younghoon Kim

 

I met Brian recently through one of our colleagues at the store. He owns an excellent vintage shop in Red Hook, Brooklyn. What Brian is doing is interesting to me from two perspectives:

최근 동료의 소개로 만난 브라이언은 브루클린 레드 훅에서 우든 슬리퍼스라는 빈티지 매장을 운영한다. 브라이언이 하고 있는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1. Brian’s vintage selection, has a strong emphasis on workwear and military wear, i.e. clothing that is designed for practical use. I find items designed in this way as beautiful as any decoration. It makes the appearance of the garment very clear and focused on its.

1. 브라이언의 매장은 워크웨어나 밀리터리웨어처럼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든 옷에 중점을 둔다. 투박해 보일지 몰라도 이러한 옷들은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실용적인 옷은 디자인이 매우 분명해서 그 옷의 목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2. Brian has setup in Red Hook, very much an up-and-coming part of New York but far from the normal retail areas. Unfortunately, good and interesting retail can be so easily crowded out of markets like New York which are expensive to find space in. Red Hook gives Brian the opportunity to create a beautiful store but the distance from the main areas of the city means he must work to a high standard to attract people to come to him. 

2. 브라이언이 매장을 연 레드 훅 지역은 뉴욕에서도 전도 유망한 지역이긴 하지만 소매 상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불행하게도 뉴욕은 임대료가 너무 높아 아무리 뛰어난 매장이라 할지라도 자칫하면 밀려 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레드 훅은 브라이언에게 기회였다. 그러나 중심가와 동떨어져 있는 탓에 차별 점이 없으면 손님을 끌어 모을 수 없다.  

 

– Mark

- 마크

 

1.Tell us what you're wearing

Gitman Vintage oxford cloth button down shirt

L.L. Bean Norwegian Sweater

L.L. Bean Field Jacket

Seiko 5 Sports Automatic 100m Scuba Diver (gift from Jeremy)

The Real McCoy’s Double Diamond Khaki Trousers Lot 451

Converse Jack Purcell Signature in white

Wooden Sleepers vintage heavy duty canvas coal bag

1. 어떤 옷을 입고 있나

깃먼 빈티지 옥스포드 버튼다운 셔츠

L.L.빈 노르웨이 스웨터

L.L.빈 필드자켓

세이코 5 스포츠 자동 100m 스쿠버다이버 시계  (제레미에게 선물받음)

리얼 맥코이 더블 다이아몬드 카키 셔츠 Lot 451

컨버스 잭 퍼셀 시그니처 화이트

우든 슬리퍼스 빈티지 해비듀티 캔버스 콜 백

 

 2. Tell us a little about how you started getting into clothing and finally ended up with a superb vintage shop. 

The first item of clothing I remember having a strong opinion about was the Adidas Samba Classic. The year was 1992 and I was in fourth grade. I was enamored with them. I was never an Air Jordan/Nike kid. Soccer ruled in my town and the Samba was king. My grandmother bought them for me and I felt like the coolest kid in school. By the time I was in sixth grade in 1994, my style was influenced by equal parts Kurt Cobain, Snoop Doggy Dog, and the CCS skateboarding mail order catalog - flannel shirts, Dickies work trousers, Chuck Taylor Allstars, Levi’s 501 jeans, band/skate t-shirts, etc. My first experience in a thrift store was revelatory. It was 1996 and I was a freshman in High School. My Grandmother volunteered at the Eastern Long Island Hospital Thrift Store and I would buy vintage t-shirts for $0.25 a piece. That turned into digging at Salvation Army and other thrift stores. By the time I was in 11th grade in 1999, I was making frequent trips to downtown Manhattan via the Long Island Railroad to shop for vintage in the basement of Canal Jeans, Search and Destroy on St. Marks, and the myriad of other nameless vintage shops in SoHo and the Lower East Side. It wasn’t until 2010 that my wife, girlfriend at the time, Allison suggested that I start a vintage men’s wear shop online. With her help, I launched Wooden Sleepers on Etsy in April of 2010 as a small collection of vintage men’s wear, accessories, and objects for the home. By the end of the year WS had participated Pop Up Flea as the only vintage seller alongside brands like J. Crew, Levi’s, L.L. Bean, Red Wing Shoes, and Warby Parker; and were invited to set up a shop in shop at Steven Alan in Tribeca. I moved WS out of my apartment into a studio space in Greenpoint where I held private shopping appointments and grew the business. My dream all along was to open a retail store, which we did in the Brooklyn neighborhood of Red Hook in November, 2014.

 2. 의류 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어떻게 해서 우든 슬리퍼스를 차리게 됐는지.

기억하기론 처음으로 간절히 갖고 싶었던 아이템은 아디다스 삼바였던 것 같다. 그때가 1992년도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보자마자 반했다. 어릴 때도 에어조던이나 나이키는 신지 않았다. 그 시절에 우리 동네는 축구가 유행이었고 삼바가 최고로 인기였다. 할머니께서 사주신 삼바 덕분에 난 학교에서 제일 멋진 아이가 되었다. 그 후 1994년 6학년 때에는 위로는 프란넬 셔츠나 밴드 스케이트 티셔츠를 입었고, 아래로는 디키즈의 워크 트라우저스나 리바이스 501 바지를 입었다. 신발은 척 테일러 올스타스를 신었다. 당시 내 옷차림은 주로 커트 코베인, 스눕 더기 도그, 그리고 CCS 스케이트 보딩 우편 주문 카탈로그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나서 1996년 고등학교 일학년 때 처음으로 중고 매장에 갔었다. 할머니께서는 동부 롱 아일랜드 병원에 있는 중고매장에서 자원봉사를 하셨는데 거기선 빈티지 티셔츠를 한 벌에 25센트면 살 수 있었다. 그때부터 구세군이나 다른 중고 매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1999년 고등학교 2학년때는 빈티지 제품을 사려고 롱 아일랜드 철도를 타고 자주 맨하튼 시내에 나갔다. 저렴한 가격에 빈티지를 살 수 있는 카날진 매장 지하나 주로 펑크 록 빈티지를 판매하는 세인트 막스에 서치 앤 디스트로이 매장에 들렸다. 그리고 소호와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빈티지 매장에서도 쇼핑을 했다. 2010년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앨리슨이 남성용 빈티지 온라인 매장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앨리슨의 도움으로 그 해 4월, 그동안 수집한 남성복과 액세서리, 가정용품을 가지고 온라인 플랫폼 ‘엣시’에서 우든 슬리퍼스를 작게 시작했다.  이어서 같은 해 연말쯤에는 제이크루, 리바이스, L.L 빈, 레드윙 슈즈 그리고 와비파커와 같은 브랜드와 함께 팝업 마켓에 참여했다. 빈티지 판매 업체로는 우든 슬리퍼스가 유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리베카에 있는 스티븐 앨런에서도 숍인숍으로 입점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 후 온라인상에서만 운영하던 우든 슬리퍼스를 그린포인트에 있는 스튜디오로 거점을 옮겼다. 그곳에서 예약제로 고객들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나는 사업을 계속 키워나갔다. 항상 내 매장을 갖는 게 꿈이었는데 마침내 2014년 11월 브루클린 레드훅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3. Any particular vintage items or periods you focus on?

Classic American style through a Northeast Atlantic lens: select Military, Outdoors, Workwear, Sportswear, and Traditional “Ivy” style. We also stock relevant home items such as old books, blankets, and other antiques.  

 3. 특별히 중점을 두는 빈티지 아이템이나 시기가 있나.

전형적인 동부 아메리카 스타일을 선호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엄선한 밀리터리와 아웃도어, 작업복과 스포츠웨어 그리고 전통적인 아이비 스타일에 중점을 둔다. 또한 오래된 책이나 담요 그리고 엔틱 용품도 구비해 놓고 있다.

 

 4. Do you treat collecting as an investment? Outside of the things you collect and sell at the store, would you sell any of your more personal items?

In my personal life, I do not buy things with the intention of “flipping”. I am much more interested in clothing than a normal person and I’m ok with that. Some people like sports and have an encyclopedic knowledge of stats and whatnot. I enjoy the process of researching an item or brand, visiting a retail store, having a conversation with a salesperson or store owner, trying on a product, purchasing, and beating the hell out of it for as long as it lasts.

 4. 투자 목적으로 물건을 수집 하는지. 매장에서 파는 물건 외에, 좀 더 개인적인 물건도 판매 할 생각이 있는지.

단기 투자를 목적으로 물건을 사진 않는다. 단지 남들보다 더 옷을 좋아하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스포츠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통계학이나 이것저것에 대해 해박하듯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옷이나 브랜드를 조사하고 매장에 방문해 직원이나 사장과 담소를 나누거나 때론 직접 착용해보고 나서 구매해 옷이 해질 때까지 입는 이 모든 과정을 즐긴다.

 

5. What do you think is next for the vintage market? Do you feel like it's growing? Becoming more mainstream? Plateau'd?

The specialty vintage store is what is most exciting now, stores with a strong point of view. Normal people do not want to dig around for hours, picking through overcrowded racks of overpriced clothing. Less is more. It’s all about the edit. The ability for a shop to tell a story without words, to communicate a feeling, a vibe, something that connects with people on an emotional level. Ultimately, it’s nostalgia. Nostalgia is very powerful. Different people are drawn to different things. For a vintage store, or any store for that matter, the most important thing is authenticity, being a good neighbor, and providing an amazing experience for anyone who comes through the doors. In that way, Wooden Sleepers appeals to a more mainstream audience - not just the vintage connoisseur.  

5. 빈티지 시장의 전망은 어떤가. 성장 중에 있다고 보는지. 주류가 될 것 같은가 아니면 이대로 정체 될 것 같나.

 최근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빈티지 전문 매장이 그들만의 고유한 개성을 갖췄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보통 비싼 옷으로 가득 찬 진열대에서 몇 시간씩 옷 고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친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편집 샵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말 없이도 이야기 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분위기로 소통 할 수 있는 매장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향수에는 매우 강력한 힘이 깃 들어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런 점에 있어서 빈티지 매장이나 혹은 어떤 매장이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점은 진정성이다. 마음씨 좋은 이웃이 되어 매장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놀랄만한 경험을 제공해야한다. 이런 면에서 빈티지 애호가는 물론 일반 고객들도 우든 슬리퍼스에 관심을 가진다.

 

6. Any style heroes for you?

My friends - Jeremy Kirkland, Joseph Au, Ouigi Theodore, David Alperin, Danny Calderon, and many more.

6. 추구하는 스타일에 특별한 롤 모델이 있는지

제레미 커클랜드, 조셉 오, 위지 테오도로, 데이비드 알페린, 대니 칼데론 이외에도 많이 있다.

 

7. You are in quite a new, up-and-coming area of Brooklyn, could you talk about it a little?

Red Hook has a real neighborhood feel. People say “hello” to each other on the street. People know each other. There is a thriving small business community. With the exception of Ikea, most all of the businesses are independently owned and operated. The food and drink is incredible. I am very happy there. I like taking a deep breath and smelling the salt in the air from New York Harbor, it reminds me of home on the North Fork of Long Island.

 7. 당신은 근래 떠오르는 지역인 브루클린의 레드훅에 거주한다. 이 지역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달라.                                              

이곳 레드훅에 오면 진짜로 이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거리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눈다. 레드훅에선 소규모 사업 공동체가 번영하고 있는데 이케아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 소유의 사업체다. 음식 이랑 음료 또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특히 뉴욕 항에 서서 바다 향을 깊게 음미할 때마다 고향 롱 아일랜드 노스포크가 생각나서 좋다.


#6

Kathryn Sargent

<캐스린 사전트> 

First published in English November 14, 2015

Photo by Mark Cho / Text by Mark Cho / Kathryn Sargent

사진 마크 조 / 글 마크 조 / 캐스린 사전트

translated by Gyeongmin Park

supervised by Younghoon Kim

 

When it comes to tailors, I strongly believe the relationship should be more than businesslike. Commissioning bespoke orders are a dialogue between tailor and customer and the process benefits from care and understanding from both parties to achieve great results.

다른 건 몰라도 테일러와 고객의 관계는 비즈니스 이상이다. 테일러에게 주문을 한다는 것은 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함께 좋은 결과물을 낳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I've been making clothes with Kathryn for around three years now. Having grown up in London, I've always felt a strong need to keep a section of my wardrobe very British. Coming from the Gieves & Hawkes tradition, I think Kathryn has a strong understanding of more constructed British tailoring but she is also flexible, willing to create softer garments as well.

나는 최근 3년동안 캐스린과 협력하여 정장을 만들어 왔다. 런던에서 성장했기에 항상 어느 정도 영국 스타일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캐스린은 유서깊은 기브스 앤 호크스 출신이어서 구조감 있는 영국 테일러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부드러운 옷을 만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Mark

-마크

 

1. What are you wearing?

• Nackymade glasses

• Alain Figaret blouse

• Kathryn Sargent bespoke suit, dinner suit style

• Dior pearl earrings

• Church’s brogue pumps

1. 무엇을 입고 있는가?

• 내키메이드 안경

• 알랭 피가렛 블라우스

• 캐스린 사전트 비스포크 수트, 턱시도 스타일

• 디올 진주 귀걸이

• 처치스 브로그 구두

 

2. Tell us a little about yourself, where you’re from, what made you want to start in the industry, how long have you been in it?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어디 출신인지, 어떻게 일을 시작했는지, 얼마나 오래 일을 해 왔는지 말해달라.

 

I am originally from Leeds, a city in Yorkshire in the north of England, and moved to London to study fashion and have been here ever since.

나는 원래 영국 북부 요크셔 주 리즈 출신이다. 패션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During my time studying for my degree, my passion for menswear really developed.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남성복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I chanced upon some old Tailor & Cutter books and started to explore the craft of drafting patterns from scratch, which led me to Savile Row where I started a work experience placement during my final year studying at the tailors Denman & Goddard.

우연히 테일러&커터 라는 오래된 잡지들을 발견해서 패턴 공부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덕분에 졸업반일 때 새빌로우에 있는 덴만과 고더드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In 1996 I graduated college and started my apprenticeship working at Gieves and Hawkes, No.1 Savile Row.

1996년에 졸업한 후 새빌로우 1번가의 기브스&호크스 양복점에서 수습기간을 거쳤다.

 

I trained in their bespoke department and became a cutter, and in 2009 I was promoted to Head Cutter, the first woman to hold this position in the history of Savile Row.

비스포크 부서에서 연수 받은 후 재단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2009년 새빌로우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수석 재단사가 되었다.

 

I have been in the industry for 20 years and I love it, I launched my own business, Kathryn Sargent, in 2012 which is based on the true values of bespoke tailoring.

나는 20년 간 몸 담은 이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2012년 비스포크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내 이름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Located in the heart of Londons Mayfair at No.6 Brook Street I offer a luxury bespoke service for both men and women.

런던 고급 주택가인 메이페어의 중심 브룩스트리트 6번가에서, 남녀 모두에게 고급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3. Who are your influences when it comes to clothing?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나?

 

In my own life I have been influenced by my father who was an extremely smart and stylish man, he always wore suits and beautiful coats.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는 정말 현명한 분이셨는데 스타일도 좋으셨다. 항상 슈트와 멋진 코트를 잘 차려 입으셨다.

 

In my business I am influenced by my clients, their personality and accomplishments often gives me ideas on how best to create something special for them.

비즈니스에서 만나는 고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개성 있고 소양을 갖춘 고객들을 응대하다 보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종종 영감이 떠오른다.

 

Kathryn Sargent offers a traditionally inspired, yet fresh approach to bespoke tailoring as in order to deliver truly personal bespoke garments there is no house style, each garment is created in collaboration with the client so that it truly reflects the personality of the wearer.

캐스린 사전트는 전통적이면서도 신선한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하우스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고객과의 협의를 통해 개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옷을 짓는다.

 

4. Any cloths you particularly like to work with? Which for summer, which for winter?

특별히 좋아하는 소재가 있나? 여름과 겨울을 예로 들자면?

 

I like working with most wools for different reasons, I love the drape and look of a winter weight wool flannel and the colours which can be found in an hand woven Harris Tweed along with the handle of it, and luxurious overcoatings.

대부분의 모직 원단을 좋아한다. 원단마다 매력 포인트는 다르다. 플란넬 같은 두터운 겨울 원단은 주름과 모양이 굉장히 아름답다. 핸드우븐 해리스 트위드 원단은 활용도 높고, 색감이 다채롭다. 오버코팅 원단은 무엇보다도 고급스럽다.

 

For summer the sharpness of a lightweight wool and mohair blend suiting, cool wools are durable and crease resistant, are my preferred choices to work with.

여름철 원단으로 자주 사용하는 가벼운 울과 모헤어를 혼방한 하복지는 깔끔한 맛이 있으며, 쿨 울은 내구성이 좋고 잘 구겨지지 않아 좋다.

 

5. You cut a lot of traditional, historic garments such as uniforms and ceremonial clothing, any in particular you like?

유니폼과 예복 같이 전통과 역사가 있는 의복을 많이 만들었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나?

 

I enjoy both the cutting, and the style of a traditional morning suit which really is beautiful.

예복을 좋아한다. 전통 스타일 예복은 정말 아름다운데 이를 재단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I have a vast experience of cutting uniforms and have been challenged with various styles.

유니폼 재단 경험이 많아서, 지금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 보았다.

 

I like the traditional overcoats such as naval great coats, watch coats, pea coats and the army British warm style.

영국 해군의 워치 코트, 피 코트나 육군 방한복 같은 고풍스러운 외투를 정말 좋아한다.

 

I create contemporary versions which are traditionally inspired for my clients.

고객들을 위해 이러한 옷들의 전통적인 느낌은 살리되 컨템포러리한 옷을 만든다.

 

6. As a member of the opposite sex cutting for men, do you think you might see men differently from a male cutter? i.e. You notice certain aspects of fit differently or you recommend cloth differently?

남성복을 만드는 여성으로서 남성 재단사와는 다른 관점으로 남자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봉하는 방식이 다르다던지 혹은 달리 추천하는 원단이 있나?

 

Clearly I have a woman’s eye, and my own eye for style which was refined by four years at fashion and art school but I have been trained traditionally in Savile Row in one of the most historical and prestigious houses, in the same way as any man would be.

물론 내가 여성이니 당연히 이 때문에 남자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패션 예술학교에서 4년 동안 갈고 닦은 나만의 스타일도 있다. 그렇지만 여느 남성재단사들과 마찬가지로 유서 깊고 명망 높은 새빌로우 하우스에서 전통적인 훈련도 받았다.

 

I am a women making clothes for men and advising them on cloth and styles which would flatter them and that is a culmination of my training and my eye – knowing what would look good on the individual.

나는 남자들을 위해 옷을 만들고 그들이 돋보이는 원단과 스타일을 조언하는 여자이다.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것을 알아보는 안목도 있다.

 

7. How does it feel being independent as opposed to working with an established Savile Row house?

유명한 새빌로우 하우스에서 일하던 것과 달리 독립하니 어떠한가?

 

I have the freedom to be creative, offer a luxury customer service and not be governed by a house style.

하우스 스타일에 구애 받을 필요 없이 나만의 스타일을 구현하고, 고급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자유롭다.


#7

The Armoury 5 Year Anniversary Speech by Mark Cho

<아머리 5주년 기념 연설>

translated by Soyeon Jung

supervised by Younghoon Kim

I gave this speech at The Armoury's 5 Year Anniversary Party in Hong Kong on October 24. We had a drinks thing at the shop and then our team and a big contingent of guests joined us for a dinner. Suppliers, journalists, customers and other supporters were all in the mix, 60 people in total. It was a great night!

다음은 2015년 10월 24일 홍콩 아머리 5주년 기념 파티에서 내가 한 연설이다. 당시 아머리 팀 외에도 고객과 후원자, 거래처와 언론사 관계자 포함해서 총 60명이 모였다. 우리는 모두 매장에서 가볍게 음료를 나눈 후, 저녁식사 자리로 이동했다. 정말 멋진 밤이었다!

 

Firstly, I’d like to thank everyone for joining us on this joyous occasion. We could not have made it here without our customers, suppliers and other supporters.

먼저, 저는 이 즐거운 행사에 저희와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고객과 파트너 그리고 후원자님들 덕분에 저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Personally, I must thank my partner, Alan, and my other colleagues, who have worked hard, pulled together as a team and made The Armoury what it is today. I also want to give special thanks to two people, one is my wife Emi, who has helped The Armoury in too many ways to count, including translating a never ending stream of Japanese e-mails and documents. The other is our shop manager, Joey, who has been with us from day 0 and ensures the smooth operation of the store. I like to think of her more as the shop “mother” than the shop “manager”.

무엇보다, 오늘날 아머리를 만들기 위해 한 팀으로 분투한 제 파트너 알렌과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또한 특히 이 자리에 계신 두 분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분은 바로 제 아내 에이미입니다. 에이미는 수많은 일어 메일과 서류를 번역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아머리를 도와줬습니다. 다른 한 분은 저희 매장 매니저 조이입니다. 조이는 처음부터 저희와 함께 했습니다. 저희 매장이 잘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조이 덕분입니다. 저는 조이를 매장의 ‘매니저’보다는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I’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to give a brief oral history of The Armoury. It all started eight years ago, two Malaysians, Alan and myself, united by chance meeting on MalayianSatayEnthusiasts.com, sharing enthusiasm for both Satay and tailored clothing, a recipe for disaster indeed. At the time, I was living and working in Chengdu, China, where I was frequently asked if I was on my way to a wedding because I wore a tie, and Alan was in Hong Kong, toiling at Li &Fung. We would meet regularly when I came to Hong Kong for breaks and eventually found ourselves both being regular customers at WW Chan.

이번 기회에 아머리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년 전, 저와 알렌은 말레이시아 사테 애호가 사이트(MalayianSatayEnthusiasts.com)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저희 둘 다 사테와 슈트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파산의 지름길이었다고 할까요. 그 당시 저는 중국 청두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회사 사람들은 제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면 결혼식에 가냐고 물어 보곤 했습니다. 알렌은 홍콩의 리앤펑에서 아주 열심히 근무하고 있었죠. 저희는 제가 휴가 차 홍콩에 갈 때마다 만났는데 알고 보니 둘 다 홍콩의 유명한 테일러 WW 찬의 단골이었습니다.

 

We became friendly with Patrick, the head cutter for Hong Kong, and later, Patrick asked if I could help organize a London trunk show, which I was happy to do. Instead of compensation, I asked if I could come along to the trunk shows regularly as an assistant and I learned a great deal from him and his senior, Peter Chan. In 2009, WW Chan was considering a Hong Kong location and Patrick asked my opinion on a few locations, at which point I suggested Pedder Building be one of them. It was an interesting idea but eventually the plans for a HK location for WW Chan was scrapped. A little while later, Alan and I were feeling ready to move on to new work and so we decided to try and do something ourselves and so The Armoury was born. From then, we were dealt several good hands that really helped us.

저희는 홍콩 WW 찬의 수석재단사 패트릭과 친해졌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패트릭은 본인의 런던 트렁크 쇼를 도와달라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금전적 보상 대신에 앞으로도 그의 트렁크 쇼에 조수로 합류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덕분에 패트릭과 그의 상사 피터 찬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09년 WW 찬은 홍콩 내에서 이전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패트릭은 몇몇 장소에 대한 제 의견을 물었죠. 저는 페더빌딩을 소개했습니다. 괜찮은 계획이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그 후 얼마지 않아, 저와 알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느꼈습니다. 저희는 먼저 우리끼리 무언가를 시도 해보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아머리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저희는 많은 분들에게서 정말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1.    My childhood friend, Katherine Wong, had just returned from working as an architect in New York and wanted to do some freelance work. She was instrumental in realizing the look of our stores, themed: “Libraries you can drink alcohol in”. We have a few of the earliest plans in the “5 Years” pamphlet floating around, please have a look.

1. 유년시절 친구 캐서린 웡은 뉴욕에서 건축 일을 하다가 돌아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캐서린은 ‘도서관 라운지 바’ 라는 콘셉트로 저희 매장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5주년‘ 팸플릿을 보시면 몇 가지 초기 계획이 있으니,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    My close university friend, Jonathan Jui, joined our team in Hong Kong, tasked with organizing the company, truly a gargantuan endeavour.

2. 제 친한 대학 친구 조나단 주이는 홍콩에 있는 저희 팀에 들어와 아머리를 조직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정말 큰 도움이었습니다.

 

3.    A nice man I met on the internet named Kevin Roberson, who has been responsible for some of the most outstanding logo and identity design in the world, including Banana Republic and Coca-Cola, was kind enough to help us with ours. Some of his original concepts, also in “5 Years”.

3. 인터넷에서 알게 된 멋진 친구 케빈 로버슨 역시 친절하게 저희를 도와줬습니다. 케빈은 바나나 리퍼블릭과 코카콜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고와 브랜드 디자인 일을 한 바 있습니다. 그의 신박한 콘셉트 또한 ‘5주년’ 팸플릿에 있습니다.

 

4.    I could not forget the Pedder Location I had originally found for WW Chan. That became the first Armoury store. At the time, it was quite difficult to negotiate and secure a lease with the landlord but we had help from a great number of characters, such as Brian Li from Bank of East Asia, and Claude Haberer from BNP, who had personal connections with the landlord that helped us finally get the space. We nearly ended up in a space a short climb up the hill to Lan Kwai Fong which would have meant fewer but sweatier and drunker customers.

 

4. 저는 제가 WW 찬을 위해 찾았던 페더빌딩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곳이 아머리의 첫 매장이 되었죠. 하지만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 협상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때 동아시아 은행의 브라이언 리와 프랑스 파리국립은행의 클로드 하버 같은 분들께서 건물주와 친분이 있으셔서 저희가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란콰이퐁 가는 작은 언덕에 자리를 얻을 뻔 했습니다. 그랬다면 손님도 적었을 것이고, 그 마저도 땀 흘리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5.    As we developed the concept, we returned to WW Chan and worked out an arrangement that would help us both. WW Chan would have a concession inside The Armoury store so that their customers could place orders, be measured, fitted and pick up orders from our location. This gave us an initial customer base for our shoes and accessories that kept us going in our early stages.

5. 아머리를 준비하면서 저희는 WW 찬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죠. 저희는 WW 찬에게 아머리 매장에도 영업권을 허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WW 찬의 고객들이 저희 매장에서도 주문을 하고, 체촌과 피팅을 하고, 옷을 받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저희는 저희가 준비한 구두와 액세서리류를 구입하는 최초의 고객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초반에 매장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죠.

 

6.    We explored various suppliers before we opened the shop, slowly creating a roster of products that would work for us. There was a long shot that we wanted to try for that was Ring Jacket. Thanks to Emi’s efforts, we managed to secure a meeting with Sasamoto-san, their sales manager who is also here today. We presented our concept and Sasamoto-san, satisfied with what he saw, asked the president, Fukushima-san to meet us as well. We were green lighted and we continue a strong and burgeoning relationship with Ring Jacket to this day. Years later, I asked Fukushima-san why we were given us the go ahead and he said “because you guys looked like you cared about clothes.”

6. 저희는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 저희에게 적합한 상품 리스트를 만들면서 다양한 공급업체를 찾아봤습니다. 승산은 없겠지만 그래도 저희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링자켓이었죠. 에이미 덕분에, 저희는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링자켓 세일즈 매니저 사사모토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희의 콘셉트를 사사모토 씨께 보여줬더니 사사모토 씨는 흔쾌히 후쿠시마 대표님께 저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저희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그때 이후 링자켓과 항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후쿠시마 씨께 왜 우리와 함께 했냐고 물어보았는데 당신은 “여러분들이 옷에 애정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7.    I also have to thank Ethan Newton, who left The Armoury over a year ago but is thriving in Japan. Ethan was present on our first day, generously helping us greenhorns setup the store. He joined the company shortly afterwards and we enjoyed working together for three years. With his help, our ability to serve, merchandise and edit, continuously developed and improved rapidly.

7. 1 년 전 아머리를 떠나 지금은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는 에단 뉴턴에게도 감사합니다. 에단은 오픈 첫 날 와서 저희 같은 풋내기들이 매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그는 이후 아머리에 합류했고 3년 동안 저희와 함께 즐겁게 일했습니다. 에단 덕분에 저희의 서비스와 판매 능력, 그리고 편집 능력 이 꾸준히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And so, in 20/10/2010, a date that was set on my father’s birthday, someone who has always been an inspiration to me as a gentleman and as a businessman, we commenced and the rest is history. Our mission has been and continues to be the proliferation of classic style from an international viewpoint. We seek the best craftsmen and companies we can to work with and we try our best to educate, advise and serve our customers. In this age where marketing budgets seem to grow inverse to product quality, I am proud to be able to The Armoury still works with people who are quite literally “best-in-class”. Characters that are perhaps strange but unquestionably dedicated to their products. It still feels slightly surreal that The Armoury has crossed the threshold of five years. Never in my life have I been so obsessed with a project or worked on something so long and whole heartedly. I feel fortunate I can call this my life. Cheers and thank you to everyone who came tonight, may we continue a fruitful and joyous relationship for years to come!

마침내 2010년 10월 20일, 남자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 항상 제게 영감을 주셨던 아버지의 생신에 맞춰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역사입니다. 저희의 임무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클래식 스타일을 계속해서 넓혀 가는 것입니다. 저희는 함께 일할 수 있는 최고의 장인과 파트너를 찾고, 고객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하고 봉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예산이 제품 품질과는 반비례해하는 시대에, 저는 아머리가 말 그대로 ‘각 부문에서 최고’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들이 어쩌면 조금 특이할지도 모르지만 각자 제품에 헌신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머리가 5년이라는 문턱을 넘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평생 이렇게 오랫동안, 온 마음을 다하여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에 몰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를 제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늘 밤 이곳에 오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오랫동안 보람 있고 즐거운 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건배!